우리 집은 금성에서 만든 비디오플레이어가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렸다 퇴근하는 아버지 손에 들린 검은 비닐에 유행하는 영화가 한편씩 들어있었다
운이 좋은날인지 오늘은 2개나 들어 있었다 러브레터와 딥블루씨 였다 남들은 극장에서 보았을 테지만 뉴 미디어 시대에는 역시나 비디오를 빌려봐야 현대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비디오 여러 편을 감상할 때는 감수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첫째가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다
두 개의 작품은 너무 취향차이가 난다 나는 뭐든 잘 먹는 편이지만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러브레터 테잎을 먼저 넣었다 예상보다 화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실망했지만 러브레터의 영상미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첫 장면부터 설레었다 감동이라고 하기엔 표현이 단순했다 일상적인 내용이 극적으로 전개되니 어느새 유연하고도 단단한 이야기가 되었다 보는 동안 미묘한 몽글몽글 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감동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얼른 다음 비디오를 봐야 한다 여러 편을 볼 때 감수 해야 할 것 두 번째는 반납일 엄수다 신작은 보통 다음날 반납이 원칙이다 오늘 안에 보고 가져다 놓아야 연체료를 물지 않는다
그렇게 두번째 테이프인 딥 블루 씨를 넣었다
앞에서 봤던 영화와 너무 다른 맛이다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써서 만든 걸작이다 (지극히 주관적 견해)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반전과 극소수의 생존자 그리고 긴박하게 발생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상어의 공격을 받는다는 내용에 제법 충실한 편이었고 재밌었다 너무나 허무한 죽음과 상식을 넘는 생존도 있어서 조금은 충격이었다
아무튼 죠스 시리즈 다음으로 가장 무서웠던 상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반납일을 지키며 신작영화를 보느라 어린 나이에도 늦은 밤까지 영화를 보는 일이 적지 않았다 대여료와 연체료 때문인지 늦은 밤까지 비디오를 보는 나를 누구도 혼내지 않았다
한 번은 밤 아홉 시 퇴근길에 약주를 하신 아버지의 손에 어김없이 비디오 테잎이 들려 있었다 기생오래비(?)같은 주인공이 내키지 않아 절대 보지 않겠다는 영화였다 아마도 대여점 사장이 추천해 줬을 거다 남자 주인공은 꺽정이 형님 같은 상남자가 제맛인데 로미오가 웬 말?!
그렇게 난생처음 새벽 2시까지 영화를 보며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타이타닉이었다
그 긴 러닝타임을 어떻게 진득하게 봤을까 갑작스러운 노출신으로 깜짝 놀랐던 기억도 있다 너무 놀라서 세 번 정도 되감아봤다 새벽에 혼자보길 다행이었다